산토리니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한국인이 있다. 내 또래의 딸, 아들, 엄마, 아빠의 정장 패밀리. 리마인드 웨딩처럼 보였다. 나도 엄마 아빠랑 여기를 다시 와야지, 원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그 꿈은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이 되면 그리스로 함께 떠나자,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약속했던 시기가 오니 엄마, 아빠가 모두 외면하더라. 사유는 ‘장기간 비행은 힘들어!’
피라 마을보다 더 포카리스웨트 느낌의 이아 마을. 그 속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대형 서점에서 팔 것 같은 책도 있었지만, 단순 인쇄물로 보이는 얇은 책도 있는 걸 보니 독립 서점쯤 되어 보였다. 한국에서 독립 서점 탐방을 즐기는 나,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친다. 얇은 그리스 음식 레시피북을 샀다.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관광객을 독자로 한 책 같았다.
이아 마을(oia)의 아틀란티스 북스(Atlantis Books)
저녁을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서 그 레피시북 속 요리를 만났다. 음식을 시켜 먹으며, 책 속 글을 또 훑으며 ‘아 이 재료가 들어갔구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알고 먹으니 더 맛있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여.
그리스식 또 다른 샐러드, 다코스
상처 보단 훈장
산토리니는 저녁이 다 되어가니, 조명이 켜지며 주황색이 되었다. 일몰을 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두 바다와 더 가까워지고자 자리를 옮겼다. 나도 탁 트인 스팟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있는 명당 냄새의 공터에 다다랐다.
여행지에서는, 특히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릴 때는 약간의 흥분과 함께 무모해지고 위험해진다. 더 좋은 자리로 가겠다 점프 점프하다 철장에 다리를 긁혔다. 피가 뚝뚝 떨어졌는데, 여행지에서의 상처라 훈장 같고 마음에 들었다. 산토리니 바다의 일몰 앞에서는 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 흉터가 왼쪽 허벅지에 있는데, 샤워할 때마다 그때 일몰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