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1 / 뷰티풀, 테마파크 산토리니 공항 이륙장을 걸으며 심히 당황했다. 여긴 울산 버스 터미널보다 작은데?
알차게 아테네 마지막 밤을 채우고, 공항 노숙 마저 대실패(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무척 피곤한 탓에, 세상이 나쁘게 보인 것도 있겠다. 어찌저찌 무거운 캐리어와 더 무거운 몸을 끌며 산토리니 숙소로 향했다. 라랄라라랄라라~ 널 좋아~ 한다고 외치던 그 화이트 앤 블루는 보이지 않고 칙칙한 회색 건물만 가득한 거리였다. 이 또한 흰색인데 피곤함에 뿌연 회색 필터가 꼈을지도 모른다.
오전 7시. 체크인 전, 배가 고파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세상 지친 표정으로 주문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의외의 말을 던졌다.
"You are so beautiful."
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처음 보는 남자가, 그것도 외국인이 나에게 이쁘다고 말했다. 잠 제대로 못 자고, 기름진 음식 많이 먹어 얼굴에는 뾰루지투성이, 머리는 노숙 여파로 기름장 수준이었는데. 원래 나는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사람을 보면 경계부터 하는 인간이다. 하하하 ^_^ 예의상 썩은 얼굴로 그에 맞는 미소를 한 방 날려주고 주문을 이어가는데 돌림노래 마냥 유얼 쏘 뷰티풀이 날라왔다. 간간히 왓츄얼 네임도 들렸다.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하 땡큐 후,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뷰티풀하지 못한 모습에 뷰티풀하다는 평을 듣다니! 풀 메이크업, 힘 한껏 준 모습이었다면, 나는 그 상황을 즐겼을까? 글쎄다. 이쁨 받는 어린이 시절을 지난 후,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이쁘다고 말한 적은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산토리니 어느 카페의 수염 난 아저씨고, 다른 한 번은 카페 알바할 때 히잡을 쓴 어느 중동계 여성분이었다. (나 외국인에게 먹히는 얼굴인가?) 그들은 예쁜 꽃을 보고 ‘우와 이쁘다’ 말하는 것처럼 아무 의도 없이 나에게 건넨 말일 수도 있다. 칭찬에 어쩔 줄 몰라 과민 반응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칭찬을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겸손하라고만 배웠다. |
|
|
베이글과 사촌쯤 되는 터키 빵 시미트와 그릭 샐러드로 아침 위를 깨운 뒤, 산토리니 숙소로 이동했다. 커플들의 휴양지답게 숙소 침대 위에는 백조 두 마리가 올려져 있었다. 그래. 이런 예술적 기술을 뷰티풀이라 하는 거지! |
|
|
어릴 적, 터키로 출장을 다녀온 아빠가 이 장식품을 사 온 적이 있다. 부적처럼 (특히 시험 기간에) 들고 다녔는데, 이것은 터키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기념품이란다. 악마의 눈, 행운을 가져다준다.
산토리니 숙소를 가는 중 발견하고 그제서야 뜻을 알게 되었다. |
|
|
‘산토리니를 묘사해 보시오’라 하면 채도 높은 파란 바다와 개미굴 같은 하얀 건물들, 그리고 그사이 더 파란 종(피라의 세 종이다)을 떠올릴 것이다. 이런 산토리니의 모습을 보려면 바다가 있는 마을로 가야 했다. 숙소는 내륙 쪽이었다. 화이트 앤 블루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관광지인 피라 마을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곳은 하나의 테마파크 같았다. 그래서 꼭 마을버스가 단체 패키지 버스 같았다. 여기, 관광지구나. |
|
|
산토리니 피라 마을은 면이 아니라 선이었다. 대각선으로 갈 수 없고, 마치 목적지를 향해 탐방하듯, 앞으로 앞으로 헤쳐 가야 했다. 한쪽에는 지중해를, 다른 한쪽에는 온갖 매력적인 상점을 두고 걸었다. 관광지답게 관광 상품이 거리 밖으로 나와 ‘날 데려가시오’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중 휘항찬란한 바지에 눈이 갔다. 전통 의상이란다. 저걸 입고 산토리니를 여행한다면? 완벽한 여행객이 될 것이리라. 크크. 상점마다 색깔과 문양이 조금씩 달라 매의 눈으로 머리 위 걸려 있는 바지들을 스캔했다. 그중 빨간 바지*에 마음을 뺏겨 10유로 착, 바로 쿨거래했다. 상점 언니가 잘 골랐다며 따봉을 날려줬다.
*빨간 바지는 여행 중 나의 애착 바지가 되었으므로, 이후의 레터에서 사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로망은 한껏 유럽의 여름 즐기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앉고 누울 수 있는 돗자리가 필요했다. 유럽에서 돗자리 찾기는 어려웠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바닥에 냅다 앉고 누웠다. 쯔쯔가무시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은박 돗자리를 깔고 앉으며 자라온 나는, 내 몸 하나 포용할 수 있는 길고 넓은 천을 샀다. 방수 기능도 없고, 비치타월이라 하기엔 너무 거친 천이었지만, 가볍고 둘둘 말면 부피도 작아 돗자리로 딱이었다. |
|
|
여행지에서 마트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그리스 산토리니 마트는 나에게 천국이었다. 요플레, 비요트가 전부였던 한국 마트와 달리 그곳은 그릭요거트가 종류별로, 지방 함량별로, 사용된 우유별로, 용량별로 수십 가지였다. 대부분이 1~2유로로 가격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산토리니 마트에서 샀던 그 그릭요거트는 지금 한국에서도 새벽 배송, 백화점 식품관 등에서 구할 수 있다. 6천 원이 넘는 가격에 기가 차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이 요거트를 맛볼 수 있다니 글로벌 시대 만만세다. |
|
|
기억에 남는 순간 1. 나는 커피, 조이는 와인을 마시며 서로 얼굴 그려주기를 하며 놀았다. |
|
|
기억에 남는 순간 2. 밤, 테라스에 앉아 페타치즈와 칩스 그리고 산토리니 와인을 야식으로 삼았다. |
|
|
Copyright © 단호한호박(임언정) All rights reserved.
Banner design by @coin_j_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