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3일의 강행군이라면,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은 1박 이후의 날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날은 무조건 걸어야 한다. 강도 높은 일정은 아묻따 아테네 둘째 날에 다 때려 넣었다. 모조리 아크로폴리스에 바쳤다. 아크로폴리스는 파르테논 신전 등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고대 유적지가 모여 있는 아테네 랜드마크다. 아테네 와서 이곳 안 가는 것은 친구 집 놀러 가서 현관만 간격이다.
유럽의 대부분 건물은 층수가 낮았다. 특히 더 낮은 아테네에서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는 가장 높은 곳이었다. 어딜가나 중앙에 우뚝 솟은 파르테논 신전은 밤에는 특히 밤하늘 북극성 같았다.
아테네에서는 에베레스트 급인 그곳을 오르기 전, ‘금강산도 식후경’ 국룰을 성실히 따랐다.
오늘도 첫 끼는 그리스식. 1일 1 그릭샐러드 여정을 가볍게 출발했다. ‘차치키’라는 것도 시켜보았는데 한 대접 쌓인 요상한 비주얼(흡사 토사물 같았다.)에 잠시 잘못 시켰나 흠칫했지만, 한 입 먹자마자 느낄 수 있었던 '어 완전 내 스타일!'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그리스 음식이다.
1인 1 그릭샐러드와 피타 브레드
차치키는 그리스식 된장으로 그릭요거트에 오이, 딜, 레몬 등을 넣어 만든다.
피타 브레드에 찍어 먹으면 완전 상추와 된장이다. 아 그 맛이 아니라 그만큼 술술 들어간다는 뜻.
그리고선 아크로폴리스에 갔는데… 사실 아크로폴리스보다 가기 전 먹은 이 차치키와 다녀온 뒤 먹은 그릭요거트, 그리스식 커피가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이야 백화점, 마트, 새벽 배송 등 쉽게 그릭 요거트를 사고 만들수 있지만, 2019년 그 당시만 해도 구할 수 있는 그릭요거트는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요거트뿐이였다. 그마저도 택배를 하지 않는다면, 카페에 찾아가는 수고스러움이 필요했다. 이대역 앞에 사는 친구 덕에 그릭데이를 알게 되고 건대에서 이대를 오가며 1일 1 그릭모닝을 실천하던 시절, 바로 그 ‘그릭’의 본토에 와 있다는 사실이 아크로폴리스보다 내 더 심장을 뛰게 했다.
나에게 그리스에서 앙꼬는 그리스 음식이었다. 시큼 짭조름한 차치키, 꿀을 쏟은 그릭요거트 그리고 조나단식 밀크티* 같았던 그릭 커피. 익숙한 맛 사이사이 낯선 맛이 섞인 되게 중독적이고 매력적인 그 맛. 그 맛이 앙꼬였다.
*조나단식 밀크티는 방송인 조나단이 티백을 뜯어 우유에 가루처럼 뿌리며 우린 밀크티를 말한다. 실제 밀크티는 티백을 그대로 넣거나 차 망에 걸러 차 가루 없이 마시는 음료다.
그릭 커피와 그릭 요거트
아크로폴리스 올라가는 길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노숙이 대수냐 걸어 아가씨야
새벽 산토리니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테네 마지막 밤은 공항 노숙을 하기로 했다. 그리스로 오기 전에도 오슬로 공항에서의 노숙이 있었는데, 그리스 아테네 여행은 노숙으로 열렸고, 노숙으로 닫힐 예정이었다.
노숙이 대수냐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마지막 밤에는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는 것만큼 최고의 계획은 없다.조이와 나는 북유럽에서 남유럽으로 넘어오며, 초봄에서 초여름으로 바뀐 날씨에 들떠, 짧디짧은 옷들을 벗었다 입었다 들었다 샀다 했다.
저녁 식사로는 투머치라는 종업원의 만류에도, 베샤멜 소스 요리(아마도 라자냐 같은 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를 시켰다. 우리는 1층 노상에서 밥을 먹었는데, 옥상에 가면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을 볼 수 있다며 사진 찍어주겠다는 종업원의 권유로, 꽤 관광객스러운 사진도 남겼다.
뒤 네모난 것이 투머치 벨샤멜 소스 요리
식당 옥상 뷰. 밥 먹는 사람들 틈에서 사진 찍힘을 당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웠다.
쇼핑도 했겠다, 배도 투머치로 부르겠다 배 땅땅 치며 광장으로 내려왔는데 마침 버스킹이 진행 중이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마지막 밤인가. 길거리에 그냥 앉아 한참을 흥얼거리며 음악을 들었다. 사람 구경도 꽤 재밌었다. 노숙이 대수냐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노숙도 ‘숙’이다. 잘 숙. 자긴 잔다. 그렇게 생각하며 늦은 밤, 캐리어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