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산에서 갈 수 있는 다른 국가는 제한적이었고 티켓값도 무지하게 비쌌기 때문에, 오슬로를 첫 여행지로 결정한 이유는 ‘경유’였다. 적은 돈으로 극강의 가성비를 뽑아보고자 머리를 굴린 결과가 국경일, 5월 17일이었고. 전날은 이벤트를 즐겼으니, 오늘은 노르웨이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래서 뭉크의 절규 앞에 서게 됐다.
가는 길이 구만리였다. 돈 없고 젊음 있고 친구 있는 뚜벅이라 꽤 긴 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요상한 스팟에 꽂히면 그곳이 포토스팟이 되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하는 여유도 있었다.
역시 미술관은 관광지였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반가운 단어가 들렸다. 한국말이다! 크리스티안산에서는 우리가 입을 다물면 한국어가 돌아다니지 않았다. 귀에 꽂히는 한국어에 반가움보다는 신기함이 컸다. 한국어는 박물관 안에서도 계속됐다. 고국에서 비행기 타고 13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 이웃 나라 박물관에서 모국어를 발견할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작품 ‘절규' 옆, 그를 기념하는 오브제 사이에는 한글로 ‘뭉크'라 적힌 책갈피가 자리하고 있었다.
절규 컬렉션
박물관과 관련된 가장 생각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가는 길과 오는 길이다. 5개월 동안 머물던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라 그런 것 같다. 약간은 비에 젖어 스산했지만, 흙과 비내음이 섞여 상쾌함이 느껴졌다.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 좋은 향이었다. 기분 좋게 공항으로 출발했다.
뭉크 작품을 보고 내려오는 길
하루가 벌써 마무리된 공항이었다. 가난한 우리는 새벽 비행기를 끊었다. 두 번째 노숙이었다. 첫 번째 노숙은 기차 안이었으니, 이번이야말로 진짜 노숙이었다. 조이와 나는 번갈아 가며 하루의 흔적을 지웠다. 편한 노숙을 위해 미리 준비한 고효율 세안 세트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와 양치를 했다. 옷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동행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편의점 나가는 행색이 완성되었다.
이미 콘센트가 옆에 있고, 편해 보이는 의자는 만석이었다. 노숙자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대단한 사람들. 그렇다고 바닥에 앉기에는 궁둥이가 차갑고 보안검색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 열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우리의 영역은 어디인가 돌아다니던 중 영업이 끝난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따로 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처음엔 ‘어, 저기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아무리 영업이 끝났고, 어떠한 바리게이트 하나 없다고 하더라도 영업장에 마음대로 들어가 노숙(?)을 해도 될까. 내 안의 도덕성이 당장의 피곤함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전날 숙소 조식 앞에서 느낀 감정이 피어올랐다. 점점 짐과 사람으로 채워지는 의자에 조바심이 앞서 후다닥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내일 아침 깨끗이 열 맞춰 정리하고 가야지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