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었고, 기차는 오슬로에 도착했다. 크리스티안산이 남해 땅끝 마을이라면, 오슬로는 서울이다. 타국에서도 난 지방 사람이다. 미리 짐을 맡길 수 있어서 숙소에 먼저 도착했다. 그곳은 작은 조식 뷔페가 있었다. 주인장이 마침 일찍 체크인할 수 있는 방이 있다며 체크인 안내를 도와주었고 그렇게 조식이 진행되던 시간에 체크인하게 되었다. 발은 엘리베이터로 향했지만, 눈은 뷔페에 고정한 채 갈등했다. 아주 많이 매우.
'체크인을 끝낸 어엿한 숙박객인데 조식을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조식은 추가 비용 없이 모든 숙박객에게 기본 제공되니 괜찮을 거야.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집 앞 짧은 횡단보도도 고민하다 결국 초록 불에 건너고 마는 나인데 배고픔과 당장의 금전적 상황에는 윤리는 개나 줘 버려.
영화 라따뚜이에서 레미와 에밀이 처음 구스토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잔뜩 훔치고 입안 폭죽을 경험하는 장면을 아는가? 훔친 것에 대한 안절부절이 있던 레미도 결국 그 맛에 굴복하고 마는 데 내 심정을 설명하기에 아주 알맞았다.
맛보다는 그 순간을 먹은 건지도 모른다. 사악한 노르웨이 외식 물가에 약 5개월간 만들어 본 음식이 23년간 만들어 본 음식 수 보다 많았다. 그 나라 고유 음식을 먹어봐야 하는데 제일 자주 먹은 음식은 까르보불닭이었다. 생각해 보니 5개월간 먹은 봉지라면이 23년간 먹은 그 수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 (라면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주부들이 여행에서 제일 좋은 것이 ‘밥 안 차려도 되는 것’이라는데 이해가 되었다.
두 손에 서빙하듯 접시를 얹어 그간 궁금했던 북유럽의 조식을 북유럽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즐겼다. 빵, 햄, 오이, 토마토가 전부인 오픈샌드위치가 그렇게나 맛있었다.
5월 17일
5월 17일이었다. 노르웨이 국경일(제헌절)이다. 5월 초부터 크리스티안산 시골 상점들도 그날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작은 국기를 팔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곳곳에 전통의상들이 널려져 있었다.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살면서 단 한 번 볼 수 있다면 제대로 봐야 한다 생각했고, 그렇게 5월 17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있게 되었다. 예를 갖추자. 한국에서부터 캐리어에 고이 담아와 옷장에 모셔둔 원피스를 그날 처음 꺼내입었다. 미리 구비해둔 노르웨이 국기와 작은 브로치도 챙겼다.
중심 거리로 갈수록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이스쿨 뮤지컬에서나 봤을 법한 악기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키를 훨씬 뛰어넘는 대형 국기들도 눈에 띄었다. 축제였다. 현실판 에버랜드 퍼레이드였다. 남의 나라 헌법이 만들어진 것을 이렇게나 신나 하다니, 즐기면서도 웃겼다. 우리나라 제헌절은 공휴일이었을 적이나 좋아했지, 요즘은 나에게 그냥 7월 17일인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나라도 광복절에 모두가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군중이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국가주의, 집단주의가 썩 좋지는 않지만 타 집단에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될 수 있다. (물론 대외관계의 이유로 힘들 것이다.) 그렇게 행렬을 따라 걸으니 나도 모르게 내가 바다 앞에 있었다.
어린이날이 온전히 나의 날이었던 해, 우리 가족은 해운대를 갔다. 바다와 몽돌만 있는 울산 바다와 달리 부산 바다는 정말 마린'시티'였다. 건물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바다 앞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나는 부서지는 햇살 같은 어린이날을 맞았다.
행렬을 즐기다 다다른 오슬로 앞바다 앞 나의 감정은 그날 해운대 바다 앞에 서 있던 나의 그것과 같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며 이렇게 외친다. 'Hipp Hipp Hurra!' (야호 같은 추임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