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비행기라 오후에 공항으로 향할 참이었다. 파리에는 3대 벼룩시장이 있는데, 나는 거리도 요일도 딱 맞는 방브 시장으로 향했다. 책상과 책장이 큰 거리를 채우고 있었고, 그 위에는 온갖 빈티지 주방용품과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탈 것이 비행기만 아니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샀을 텐데. 휙휙 던져질 수화물의 운명이 야속했다.
시장 한쪽에서 어느 어르신이 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계셨다. 바퀴 달린 들것에 올려진 피아노와 어디서 가져온 것 같은 의자가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잘 설명해 주었다. 아코디언 같은 피아노 소리가 활기찼다.
점심을 먹고 며칠간 주구장창 건넜던 센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두 다리로 꾹꾹 밟으며 천천히 건넜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점심 식사, 오리 스테이크. 디저트까지.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며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귀국길이 아쉽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다. 무언가 마음이 차분해지는 상황만 있고,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순간의 감정과 기분을 그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의를 할 수 있는 편이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아시아나 항공을 탄다는 사실에 설렜던 것. 가난한 대학생이라 가까운 제주도에 가도 늘 저가 항공을 탔고, 해외는 무조건 경유했다. 내게 국내 메이저 항공사는 그 당시 부의 상징이자 계획형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빨리 티켓을 살수록 티켓값이 저렴해 메이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깐.)
그런 내가 출장을 많이 다니는 아빠와 교환학생을 하면서 탔던 수많은 비행기 덕분에 마일리지로 아시아나 항공 직항을 타게 되었다. 아시아나 항공은 얼마나 좋을까? 한국 승무원이겠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유일하게 있는 비행기 티켓 인증샷. 이 말인 즉슨, 어지간히 신났다는 뜻이다.
아직 귀국 전인데도 한국인 승무원, 같이 비행기를 탄 수많은 한국 사람, 들리는 한국어, 한국어 안내판, 한국 음식들로 벌써 귀국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국 도착. 공항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와 화장실에서 보이는 한국 문구가 너무 신기했다. 불을 처음 보는 원시인처럼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반가웠던 것은 광명역에 도착한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흔들며 웃고 있던 아빠. 마침, 아빠는 경기도 출장을 왔고, 나와 같은 울산행 기차를 예매했다.
‘아빠아아~’ 어릴 때처럼, 함박웃음으로 6개월 만에 만난 아빠에게 인사하며 버스 계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바로 뒤 나를 따라 내린 아주머니가 ‘아휴 아빠와 똑같이 생겼네‘ 라고 했다. 아빠는 빨간 바지에 퉁퉁 부은 얼굴, 꾀죄죄한 내 모습을 보고 거지꼴이라 했다. 경상도식 반가움의 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