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미술관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과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두 곳보다 상대적으로 사람도 적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기 빨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다. 수련의 조각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갔을 때, 작품 앞 이젤을 두고 일렬로 앉아 그림을 그리던 어르신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를 겪은 유럽의 바이브인가. 오랑주리 미술관에도 모작을 그리는 중년이 있었다. 컴퓨터 화면이 아닌 진짜 작품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 흉내 내보고 싶지만, 실력이 없어서 아쉽다.
파리지앵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던 파티세리에서 산 디저트. 프랑스 디저트 베스트다.
파리 생활 제2막
새로운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에펠탑 근처에서 파리 일정 내내 묵기란, 가난한 대학생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파리 외곽의 다른 한인민박을 선택했다. 그곳은 원한다면 아침은 물론 저녁도 제공되는 곳이었다. 체크인 후, 저녁을 먹고 관광 2회차에 들어갔다. 여름의 유럽은 백야현상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하루가 참 길다.
저녁으로 한식이 준비되었다. 반가워 한식!
해가 길면 좋은 점은 위험하다고 소문 난 곳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낮이 한밤보다 안전하니깐. 소문으로 들었던 파리에서 제일 위험한 곳은 몽마르뜨 언덕을 가는 길이었다. 소매치기범도 많고, 팔찌 강매단도 많다 그랬다. 출발하기 전, 그중 제일 위험하지 않은 길을 파악해 오르는 동선을 짰다. 불필요하고 짜증 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비는 필수였다.
긴장이 무색할 만큼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길은 고요했다. 오르는 길 어디서 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느 집 마당에서 고전 연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외 연극이라니! 로망스. 낭만의 도시다.
다행히 나에게 강매하거나 인종차별 하는 사람도, 내 가방을 열고자 옆에 붙는 사람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유럽 여행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나에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작 5개월이지만 그간의 유럽 생활이 어리버리 여행객 티는 벗겨내고 꽤 유럽 프로 적응러처럼 보이게 만들었나 보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을 때, 한인민박 언니들이랑 잠시 스몰토크를 했는데 나보고 유학 생활 오래 한 줄 알았다고, 그런 느낌이 난다고 했다. ‘그런 느낌’이 유럽의 나쁜 사람들 먹잇감에서 멀어지게끔 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건 칭찬이었을까 욕이었을까.
몽마르뜨 언덕 아래에는 사랑의 벽이 있다.
언덕으로 가는 길에 만난 에펠탑들. 강매단의 단골 물품이란다. 근데 나는 이 키링을 좋아한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지붕과 시야는 수평선이 된다. 그사이 삐죽 튀어나온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화이트 에펠탑
한인민박 언니들이 화이트 에펠탑을 보러 가는 데 나를 초대했다. 평소 노란빛인 에펠탑은 12시 자정 땡 하면 흰색으로 변한다. 지금까지 에펠탑 근처에서 나흘을 있었는데, 혼자였던 탓에 화이트 에펠탑을 보진 못했다.
11시쯤 약속 시간에 맞춰 에펠탑이 잘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갔다. 거긴 밤 반포 한강 공원 같았다. 술을 들고 있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고성방가가 뒤섞여서 아비규환이었다. 야심한 밤 그곳에는 사람 말고 다른 것도 있었다. 사람만큼 많았다. 고양이만한 쥐가 슈욱 지나가고, 또 슈욱 지나갔다. 뉴트리아인 줄. 라따뚜이의 레미는 귀여웠는데 진짜 파리의 쥐는 공포였다. 나에게 파리 더럽다고 했던 사람들은 분명 화이트 에펠탑을 보러 트로카데로 광장에 갔을 것이다.
특별한 것과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별개다. 그날 나의 기분, 분위기, 체력 등이 영향을 준다. 12시가 넘어가는 시간, 나의 체력은 빨간 불, 분위기는 정신없음, 기분은 이미 서로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소외감. 화이트 에펠탑은 신기했지만, 더 좋았던 것은 파리 첫날 혼자 와인을 마시며 본 오렌지 에펠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