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큰 박물관이었다. 규모뿐 아니라 운영체제, 건축 자재, 제공되는 서비스 등 모든 것이 규모만큼인 박물관이었다. 묘하게 박물관이 아니라 백화점의 느낌도 났다. ‘이거 어떻게 다 보지’ 겁이 나면서, 다 볼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맘 먹었다. 불가능한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집이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는데, 닌텐도와 헤드셋 형태였다. 헤드셋을 끼고 닌텐도로 이것저것 누르니 박물관 구경이 아니라 게임을 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루브르에서 느낀 점. 역시 난 2D보다 3D가 좋다! 전날 갔던 오르세 미술관 보다 훨씬 흥이 났다. 조각상의 앞뒤 옆 아래를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 꼭 숨겨진 비밀 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이 손이 등에 붙어 있는 것 같다.
승리의 여신 니케
특히 이집트 유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낯선 문화권의 신비로움이 있었다. 이집트 벽화 속 인물들을 잠시 상상해 보라. 새까만 머리에 마치 아이라인을 한 듯한 눈이 인상적이다. 우리 집 사람들도 짙은 눈매와 새까만 머리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유물들을 구경하다 엄마 아들과 똑같이 생긴 조각상을 발견했다. 만약 실존하는 인물을 조각한 것이라면, 동생의 전생임이 틀림없었다. 뚱한 입술, 시선을 끄는 큰 코, 바가지 씌운 듯한 일자 앞머리, 아이라인을 한 듯한 눈매. 사진을 찍어 어떤 말 없이 가족 단톡방에 사진만 보냈는데 아빠와 엄마가 단번에 의도를 알아챘다. 아빠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그 멀리에 가서도 생각하냐고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너 쫌 익숙하다?
루브르 안.
루브르 밖.
독서보단 책, 책보단 서점
서점을 좋아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고. 책 속의 내용, 문장 보다 책의 메세지, 기획 의도, 표지와 그 총체적인 느낌이 흥미롭다. 서점마다 책을 진열하는 규칙 또한 재미있는 요소다. 책을 사는 목적이 아니라면, 외국에서 서점 구경은 낫프라블름이다. 오히려 다양한 표지, 크기, 두께 등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미식의 나라답게 요리와 관련된 책만 파는 서점이 있었다. 색다른 음식과 요리 레시피에 관심이 많은 내 마음은 쿵쾅쿵쾅,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빵수니 친구에게 줄 디저트 레시피 북을 샀다. (16년도에 함께 여행한 그 친구 맞다.) 지금 그 책은 빵수니 친구의 비건 베이커리 카페 한쪽에 전시되어 있다. 가서 볼 때마다 흐뭇하다.
옆 침대 언니
다음날 체크아웃이라 짐 정리차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를 정할 때 에펠탑 근처에 묵고 싶은데 숙박비가 너무 사악해서 선택한 차선책이 절반은 에펠탑 지역에, 절반은 저렴한 외곽에 묵는 것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있으니 옆 침대 언니가 들어왔다. 늘 11시 넘어 숙소에 들어 온 탓에 언니의 얼굴을 처음 제대로 봤다. 언니는 내게 밥을 먹었냐 물었고, 나는 ‘여기 앞에 갈레뜨 맛집이 있다고 해서 먹으러 갈 참인데 같이 가실래요?’ 물었다. 4일을 같은 방을 썼는데 그렇게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식사를 하러 함께 나가게 되었다. 혼자 여행자에게 한인민박이나 도미토리는 이런 점이 좋다.
짧은 저녁 식사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언니가 나를 귀여워하면서, 대견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니는 30대 초반이었는데, 곧 30대 초반이 될 나이가 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20대 초반이 혼자 여행을 와 앞에서 조잘거리고 있다면 귀엽고 대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