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0 / 블랑제리 파티세리, 파리에서 할 것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에게 ‘파리?’라고 한다면 ‘바게트?’라는 답변을 들을 확률이 높다. 파리는 바게트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숙소 근처 블랑제리로 갔다. 프랑스에서 빵은 크게 블랑제리(Boulangerie)와 파티세리(Pâtisserie)로 나뉜다. 블랑제리는 식사용 빵으로 바게트, 깜빠뉴 등이 있고, 이런 빵을 주로 파는 빵집도 블랑제리라고 부른다. 파티세리에는 우리가 디저트라 부르는 것들이 포함되며, 마카롱, 밀푀유 등이 있다.
사당역 5번 출구 아래 꼬마김밥집은 출근 전 속을 든든히 채우는 사람들로 삥 둘러 있다. 파리 블랑제리에도 직장인으로 보이는 파리지엥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가끔 이런 모습을 보면 서로 다른 척하는 우리가 조금 가소롭다. 사실 동물 중 가장 비슷한데 말이야.
마치 입력 - 산출과 같은 신속하고 단순한 주문 - 포장 시스템 덕분에 줄은 금방 줄었다. 그 신속함에 ‘나도 빠르게 주문해야지’ 했지만, 바게트 하나에도 밀 N% 통밀 X%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기에 ‘어어…’만 반복하다 추천 바게트를 샀다. 물가가 사악하기로 유명한 파리지만, 니스와 비슷하게 바게트 가격은 1유로 그 언저리였다.
먹기 좋게 잘라서 봉지에 넣어주는 한국 빵집과 달리, 파리 블랑제리는 바게트를 전용 종이봉투에 넣어 꼭다리 삐죽 나온 채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주식이 빵인 나라라 굳이 커팅이 필요 없기 때문이겠지? 손으로 바게트를 북북 찢어 입으로 넣으며 걸었다. 역시나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목적지는 샹젤리제 거리.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데, 나는 생각하기 귀찮아서 고생하는 편이다. 고생도 아니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1시간은 가뿐히 걸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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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로 가는 길, 기생충 포스터를 보고 또 반가운 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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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샹젤리제~’를 들을 때, 주황색 가로등과 적당한 나무가 빽빽하지도, 그렇다고 휑하지도 않은 딱 안정적일 만큼 있는 거리. 그 거리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디저트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두 눈으로 본 샹젤리제 거리는 명동이었다. 유럽치고 꽤 높은 건물이 있는 쇼핑거리로, 그 쇼핑거리에서 에잇 기분이다 프랑스 뷰티 브랜드 mac의 핫핑크 립스틱을 샀다. 태어나서 처음 사보는 컬러였지만, 여행은 이벤트니깐, 재밌었다. 4년이 지나고 퍼스널컬러 진단을 해보니 그 립스틱 컬러는 나의 퍼스널 컬러에 베스트를 넘어 퍼펙트한 색상이었다.
‘파리 쇼핑’이라 검색하면 늘 나오던 라파예트 백화점이 샹젤리제 거리에 있길래 가던 참이었다. 지도를 보고 대충 위치만 파악한 채 그냥 걸었는데, 지나칠 뻔했다. 멀리서 봐도 ‘나 백화점이오’ 아우라를 뿜어내는 한국 3대 백화점과 달리,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건물들 사이에 그냥 하나의 건물인 척 위장술을 펼치고 있었다. 규모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다이소만 했던 것 같다.
프랑스 디저트를 먹어야겠다 싶어 점심을 바게트로 가볍게 먹었다. 약간의 허기짐을 파악하고, 라파예트 백화점 식품관의 디저트들은 나를 한껏 유혹했다. 그중 가장 고혹적인 친구를 골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고른 디저트는 프랑스에서 제일 오래된 파티세리 ‘스토레(Stohrer)’의 디저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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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것. 빵모자 쓰고 길 걷기. 노점상에서 검은색 빵모자를 샀다. 매년 버리기 선수 엄마의 임언정 버릴 옷 리스트에 추가되는 모자인데, ‘그건 그냥 모자가 아니라 기념품이야’로 사수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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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 끝에는 튈르리 정원이 있다. 튈르리 정원에는 의자가 참 많아, 잠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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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식사다. 혼밥이 싫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메뉴를 먹지 못해서 아쉽다. 니스에서 꾸미가 파리에 가면 꼭 양파수프를 먹으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그치만 양파수프는 메인 요리가 아니다. 양파수프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가야 했다. 바로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알아봤다.
같이 밥을 먹은 사람들의 얼굴은 또 역시나 기억나지 않지만, 식당의 인테리어, 우리가 식사한 테이블이 2층에 있었던 것, 내가 중간에 화장실을 갔던 것,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레드와인을 추가 주문한 것, 달팽이 요리 에스까르고가 생각보다 맛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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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취해 무척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혼자 센강을 건넜다. 머리 위 검은색 빵모자와 취기에 붉어진 뺨의 대비가 밤하늘과 잘 어울렸다. 밤 9시였는데 백야 현상으로 하늘은 푸르렀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나는 센강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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