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여름휴가에 진심이라, 7월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 8월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을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런 칠팔월의 휴가자들이 사랑하는 도시 니스. 니스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여름 휴가지로 인기가 많단다. 아일랜드 외노자 꾸미에게도 니스는 여름 휴양지였다.
전날 반쯤 감긴 눈으로 반수면 상태의 헛소리를 지껄이느라 늦게 잔 탓에, 오전을 다 보내고야 스멀스멀 외출 준비를 했다. 아점을 먹고 오후가 되어서야 숙소를 나왔다. 그럼 뭐 어때. 여름 휴가인데! 가방 안에는 수영복이 들어 있었다.
대충 바닥에 짐을 두고 튜브나 구명조끼 하나 없이 파도에 맞서 뛰어들었다. 멀리서는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였는데, 물 안은 전쟁터였다. 사나운 파도에 몸을 가누기 어려웠고, 파도가 칠 때마다 철퍽 무릎을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자갈에 무릎이 찍혀 피가 났다. 물은 무척 차가웠고.
그래도 뭐가 좋았는지 친년이 처럼 깔깔거리며 파도 그리고 고통과 맞서 싸웠다. 지쳤다면, 맥반석 오징어처럼 돌멩이 위에서 몸을 말렸다. 파도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수영복 안에서 작은 돌멩이들이 계속 나왔다. 그게 뭐 또 웃기다고 하나씩 빼면서 낄낄거렸다.
파도에 진 꾸미. 졌잘싸. (꾸미 사진은 여러분과 나만의 시크릿.)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길모퉁이의 빵집에서 바게트를 샀다. 어제 샀던 바게트는 아점으로 다 먹었다. 떨어진 쌀 사서 귀가하는 동네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꽈배기 같은 빵이 있어, 함께 샀다.
한입 베어 문 바게트와 나의 앞머리가 똑같군.
꾸미를 위해 노르웨이 기숙사에서 자주 해 먹었던 고추장 파스타와 계란말이를 했다. 꾸미는 매콤한 음식을 좋아한다. 사실 꾸미라는 이름도, 매콤한 주꾸미 볶음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 시절 내가 붙여 준 애칭이다. 그런 꾸미를 기쁘게 해 줄 마음으로, 기숙사에서부터 태양초 고추장 튜브 하나와 함께 니스로 왔다. 고추장 파스타, 계란말이, 바게트로 만든 복숭아 카나페 그리고 블랑 맥주. 식탁 위는 동서양의 오묘한 화합이었다.
문과대 과방
늦은 밤 니스 엠티 마지막 멤버 유니가 왔다. 유니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꾸미와 나는 1층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유니를 기다렸다. 밝은 전조등의 시야 테러와 함께 검은 차 한 대가 숙소 앞에 섰다. 운전자가 열어주는 뒷문에서 유니가 내렸다. 여전히 밝고 능청스럽고 쾌활한 유니였다. 하이틴 영화에서 퀸카가 운전 기사님이 열어주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는 느낌이었다.
유니는 도착하기 전 카카오톡에서부터, 짐을 들고 숙소로 올라와 풀기까지 ‘우버 기사가 참 잘생겼다’, ‘역시 프랑스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런던 핫걸 모먼트의 유니 덕에 힐링캠프였던 꾸미와 나의 숙소 공기가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약 9시간이 떨어진 프랑스인데, 우리가 공강이면 모이던 문과대 과방으로 시공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늦은 밤이라 모두가 피곤한 상태였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이 나 눈을 감은 채 입만 뻐끔뻐끔 이야기를 방출했다.
한국에서 엠티 말고 대학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여행 가자고 이야기만 수천 번, 막상 떠나려고 하니 계절학기, 대외 활동, 알바 등 걸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묘했다. 국내 여행 한 번 가는 것이 이렇게 외국에서 만나는 것보다 쉬웠을 텐데. 알고 지낸 사이 기껏해야 6개월 정도인 사람 가득한 해외에서, 오랜 친구가 모두 간절했나 보다.
부록. 이탈리아 로마 짐색과 그리스 산토리니 천으로 이루어진 피크닉 세트. 니스에서 가장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