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5 / 프랑스에서 아침을, 여행의 일요일, 씨제이가 이렇게 감동적이었나 프랑스 니스에서의 아침은 ‘와 아침이 밝았다!’ 그 자체였다. 햇빛이 들어오는 큰 침대에서 이불을 바스락, 뒹굴며 깼다. 여유롭게 아침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니스 여행 만족도 최상이었다.
대충 옷을 껴입고 어제 마트 다녀오는 길에 본 빵집으로 달려갔다. 갓 나온 바게트를 먹겠다는 큰 포부가 있었다. 나는 바게트, 깜빠뉴 등 곡물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빵을 좋아한다. 겉면은 바삭하다 못해 까칠해 가끔 입천장이 까진다면 박수. 1유로 몇 센트로 산 바게트는 박수받아 마땅한 바게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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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5천 원은 거뜬히 넘길 비주얼의 바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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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내리고 어제 산 복숭아와 사과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바게트 위에 치즈를 바르고 복숭아를 얹은 뒤, 그리스 올리브오일을 조금 뿌려 한 입을 와앙. 그리고 커피 한 모금, 호로록. 약 2주 전 공항 의자에 웅크리고 자다 깨, 카페 오픈과 동시 마신 생존 커피와는 다른 차원의 풍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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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꾸미가 니스에 도착하기 때문에 저녁까지는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 주말처럼 천천히 혼자만의 니스를 즐기러 나갔다. 그리스 자킨토스의 해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해변(2016년에 그곳에 갔다),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의 바다. 유럽의 바다와 해변을 적지 않게 가봤는데, 모두 이색적인 느낌은 없었다. 동해 느낌 물씬인 유럽의 해변에 제주도 바다가 더 낫구먼 생각도 들었었다.
니스의 해변은 이전 유럽의 해변들과 느낌이 달랐다. 여기는 예상하고 기대했던 유럽의 해변이었다. 딥아쿠아 색의 보석 같은 바다 앞 자갈에 그냥 누워있는 사람들도 신기했고, 차도 만큼 넓은 인도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바다를 향해 인도 따라 길게 놓인 철제 의자가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나라 해변 길에는 보통 듬성듬성 3인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벤치가 있다. 벤치 대신 놓인 1인용 의자는 혼자인 여행객도, 오랜 시간 앉아서 바다를 즐길 여행객도 모두 즐겁게 해줄 것처럼 보였다. 그 여행객은 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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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는 여행의 새로운 전환점. 그래서 리프레시 겸 앞머리도 잘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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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따라 걸어 시장에 다다랐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친구 가브리엘은 프랑스 니스에서 왔다. ‘나 니스 갈 거야.’ 친밀감을 위해 던진 한마디에 가브리엘은 PPT로 니스 소개 자료를 만들어 와, 나 맞춤 1인 발표를 해줬다. 니스의 역사, 먹거리, 가볼 만 한 곳이 적힌 자료였는데, 고향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그 애정을 만든 국가 프랑스와 도시 니스에 존경의 마음도 생겼다. 시장은 가브리엘의 자료에 있던 곳이었다. 싱싱한 니스 채소와 과일, 꽃을 파는 곳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 시장 ‘마르쉐’를 엄청 좋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여기가 마르쉐의 본고장이지 싶어 성덕이 된 것 같았다.
가브리엘이 알려준 니스 먹킷 리스트에는 니스식 샌드위치가 있었다. 계란과 토마토, 참치가 둥근 빵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였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나라별 샌드위치만 알았지, 지역별 샌드위치가 있다는 건 또 처음이었다. 하긴 우리나라도 진주 땡초김밥이 있으니.
테라스 노친자(노상에 미친자)라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가게 앞 테이블로 나왔다. 신선한 샌드위치를 음미하며 한참을 먹다 잠시 휴지를 가지러 매장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오엠지. 내 샌드위치가 비둘기들에게 점령당했다. 평소에도 비둘기 친구들에게 거친 말을 자주 내뿜는데, 그날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거친 말을 내뱉었다. 알게 뭐람. 한국인은 나뿐인걸. 그 비둘기들도 한국 욕은 처음 들어봤을 거다. 다가가기만 해도 날아가는 한국 비둘기와 달리, 니스 비둘기들을 도통 갈 기미가 안 보여 쫓는데 애먹었다. 내가 먹는 음식은 동물 친구들을 부르는 힘이 있는 걸까? 고등학생 때 급식 판 위 아껴두었던 고구마 케이크에 나보다 똥파리가 먼저 손을 대 한 입도 못 먹었던 기억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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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때문에 모자라듯 샌드위치를 먹고 니스 시내로 나왔다. 고즈넉한 바닷가, 시장과는 달리 시내는 꽤 번화가였다. 번화가로 나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2019년 5월 21일, 영화 기생충이 개봉했다. 무려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보다 이곳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했다. 이후 30일 한국에서도 개봉했고, 여행 중이던 6월 초는 온 나라가 기생충 이야기로 화제였다. 나는 영화관을 좋아해 일주일에 두 번도 영화관을 가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약 6개월 동안 집에서 넷플릭스만 보니 좀 답답한 게 아니었지.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온갖 미장센이 난무하는 해석 거리 가득한 영화인데, 기생충이 난리인 이유는 바로 그 기호학적 풍부함에 있었다. 칸 영화제 초청작이니깐, 그리고 니스는 칸이랑 무척 가까우니깐 여기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니스에 왔는데, 만만세. 니스 첫날, 거리에서 기생충 포스터를 봤다.
니스 시내의 영화관 티켓박스에서 기생충 티켓을 샀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프랑스에는 더빙 영화가 많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아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프랑스어 더빙이거나, 영어 음성에 프랑스어 자막일 거라 했다. 조금 슬펐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었다.
상영 시간이 되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재미없어도, 실망이라 해도 괜찮았다. 프랑스 니스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라니! 작은 영화관에는 듬성듬성 사람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가장 감정이 벅차올랐던 장면은 아이들이 까르르거리며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 CJ를 그렸을 때다. 이걸 니스에서 보다니! 다행히 영화는 한국 배우들의 한국어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프랑스 자막 버전이었다. 프랑스 어느 시골 영화관에서 한국어를 들으니 대한민국 만세, 자부심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매표소 직원이 한국 영화인 줄 몰랐던 거니깐 조금 씁쓸했다. 이거 유명한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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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가 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멀리 아일랜드에서 올 꾸미를 위해 전날 산 블랙 푸딩(선지 소시지)과 한국에서 모셔 온 고추장으로 순대볶음을 만들었다. 낮에 쇼핑몰에서 산 로제 와인도 꺼내두었다. 이후 꾸미가 왔고, 순대볶음과 와인을 나눠 먹으며 우리만의 엠티를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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