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아침이 되면 헤어질 것처럼 전날 조이와 마지막 밤을 즐겼지만, 진짜 마지막으로 와인 투어가 남아 있었다. 이동하기 편한 경유지로 피렌체를 선택했다지만, 피렌체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인 와이너리 투어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에어비앤비로 토스카나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했다. 피렌체 근교의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의 중요한 와인 산지다.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는 호스트의 농장과 숙성 창고를 구경하고, 와인과 음식을 먹는 투어였다. 중개 플랫폼이 에어비앤비라는 점에서 믿을만한 사람인가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당시 한국 여행 사이트에는 마음에 드는 와이너리 투어가 없었다. 우린 와인과 핑거푸드가 제공되는 투어를 원했다.
와이너리 주인집 아들이 피렌체까지 봉고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관광객과 건물이 있는 피렌체를 빠져나와 레고 나무 같은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산 도로를 달렸다. 내가 언제 피렌체 외곽의 어느 시골 도로를 달려보겠는가. 예약할 때의 두려움은 민망할 정도로 싹 사라졌다.
가지런히 심겨 있는 나무들
어느 미국인 커플과 함께 와이너리 투어를 했다. 농장을 둘러보고 포도 숙성 창고를 보는 동안 주인집 아들은 자신의 와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설명했다. 이탈리아식 영어를 구사하는 주인집 아들, 그 특유의 귓가에서 튕겨 나가는 발음과 요동치고 있는 허기짐 때문에 설명도 뇌에서 튕겨 나갔다. 사실 상관없었다. 이 투어에서 제일 바라는 것은 포도밭을 보면서 마시는 와인과 작은 핑거푸드였으니깐.
만들어진 와인은 식당이나 그로서리 마켓으로 납품된다.
이윽고. 주인집 아들이 1시간이 넘게 자랑했던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과 오픈 샌드위치가 포도밭 앞 테라스에 펼쳐졌다. 와인을 마시며 맞은편 미국인 커플과 스몰 토크를 했는데, 그들이 교환학생을 끝내고 여행 중이던 우리를 귀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라도 귀여웠을 것 같다.
투어에 포함된 와인은 2잔이었지만, 주인집 아들이 더 마시고 싶다면 한 병을 추가할 수 있다 권했다. 영업을 참 잘하는 친구였다. 커플은 아쉬웠는지 와인을 더 하겠다고 했고, 잔이 아니라 병으로 추가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함께 할 것이냐 물었다. 당연히 예스. 오브 콜스.
와인 값은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한 뒤 한 병을 넷이 해치웠다. 나도, 조이도, 커플도 취기가 올라옴이 느껴졌다. 취한 상태로 피렌체로 돌아가는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 이후론 커플과 영영 안녕이었다. 돈을 줘야 하는데, 먹튀하는 어글리 코리안은 되기 싫은데 생각이 드는 한편, 우리를 참 귀여워했던 딱 봐도 재력이 있어 보이는 커플이었는데, 그래서 그냥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에어비앤비 메시지 함을 계속 확인했지만, 아무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정말 선물이었나 보다 싶었다.
닭 그림은 끼안띠 클라시코의 상징이다.
취기가 가시지 않은 채 조이와 헤어졌다. 6개월 동안 같이 있었던 친구와의 이별이었는데, 한국 가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는데 (사는 도시가 달랐다), 과음과 함께 찾아온 두통에 얼렁뚱땅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