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 어떤 기대나 무엇을 봐야겠다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로마와 프랑스 니스 사이, 약 3일 정도 머물 여행지가 필요했는데 동선상 피렌체가 딱 맞았다.
많은 사람이 피렌체에 우피치 미술관과 다비드상을 기대하며 간다. 나는 예술 작품이나 미술 전시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다행인 점은 역사는 좋아한다. 오래된 예술 작품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점심 먹기 전 우피치 미술관, 점심 먹고 아카데미아 미술관. 미술관 투어의 날이었다.
다 벗고 있는 다비드상이 명성과 달리 쓸쓸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외형은 무척 멋졌으나 그 쓸쓸함이 조금 웃겼다. 다비드상의 눈동자는 움직이는 사람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고 해서 빙글빙글 뱅뱅 다비드상 주변을 맴돌았다. 따라오는 다비드상의 눈동자도 은근 웃겼다. 다비드상은 생각보다 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했다.
뭔가 웃긴 다비드상의 눈동자. 검은자가 뚫려있다.
미켈란젤로 보유 도시 피렌체에는 거리에도 조각상이 많다. 그곳 나뭇잎으로 가리는 것은 범세계적인가 보다.
이해할 수 없으나 피렌체 아르노 강은 똥물이었다. 하필 건물 색도 황토색이라 도시가 아주 그냥 누리끼리.
조이와 마지막 밤
‘우피치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피렌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트립어드바이저는 소개한다. 하지만 나의 피렌체 하이라이트는 미켈란젤로 언덕이었다. 6월 2일 밤은 한 달 여행의 약 절반이자, 그 반 동안 함께한 조이와의 마지막 밤이었다. 조이는 피렌체를 끝으로, 독일로 떠나고, 나는 프랑스로 갈 예정이었다.
작은 와인과 햄 치즈, 샐러드를 사 언덕을 올랐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광장 어느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킹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1월부터 시작된 우리의 만남에 대해 테트리스 맞추듯이 이야기를 쌓아 올렸다.
와인에 기분이 업되고 익어가는 노을처럼 양 볼도 익어갔다. 조이와 나는 서로 알게 된 지 이제 막 6개월이 된 참이었지만, 눈 뜨면 보는 반 동거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와의 6개월보다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친밀함이 익어가는 속도가 비슷했다. 와인을 마시며 함께한 5개월을 포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밤이 저물고 좋아진 기분에 깡총깡총 총총총 뛰어 언덕을 내려왔다. 음주 후 아이스크림은 본능. 젤라또 집에 들어가 한 컵을 쥐고 마저 총총총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