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랜드마크는 십중팔구 콜로세움일 것이다. 콜로세움을 꼭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로마까지 왔는데 콜로세움을 안 본다는 것은 부산 가서 해운대 안 가는 것, 서울 가서 한강 안 가는 것 만큼 아쉬울 것이었다. 빠른 입장을 위해 예약을 했지만, 들어가는 줄이 꽤 길다는 후기를 보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역시나 큰 감흥은 없었다. 어릴 적 울산 문수 경기장에 축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다니던 대학교에는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의 돔형 운동장이 있었다. 그 두 곳과 콜로세움은 비슷했다. 콜로세움은 저 멀리서 보는 것이 더 멋졌다. 가까이 보아야 예쁜 것들을 나열한다면 콜로세움은 절대 추가 불가다. 한편, 서기 80년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되는 건축양식이 신기하면서도 시시했다.
황토색 뿐인 콜로세움
구름과 하늘이 다 했다.
유적지, 박물관의 꽃은 기념품 샵이라 생각한다. 콜로세움 안을 조금 걷다 바로 기념품 샵으로 갔다. 작은 문구류부터 책 그리고 실용적인 페브릭 제품까지. 콜로세움을 볼 때는 ‘-_-’이었던 표정이 ‘O_O’로 바뀌었다.
그곳에 있던 피자 도감을 무척 사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일정에 책을 함께 하려니, 벌써 피곤해 용사가 그려진 짐색 하나만 샀다. 산토리니에서 산 돗자리용 천을 넣으니 피크닉 준비물로 딱이었다. 이 피크닉 패키지는 앞으로의 여행에서 정말 요긴하게 쓰였다.
사고 싶었던 피자 도감
피자 이게 맞아?
이탈리아 3일 차인데 아직 제대로 된 피자를 먹지 못했다. 미국식 토핑 가득 피자보다 토마토소스 위 듬성듬성 하얀 치즈의 수제 피자(마르게리따 등)를 더 좋아한다. 빵은 프랑스인도 빵이라 부르는 깜빠뉴, 바게트 등의 진짜 ‘빵’을 디저트보다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티라미수도, 이탈리아 디저트도 아닌 피자였다.
길을 걷다 어느 벽을 마주하고 식당이 쭉 줄 선 골목을 발견했다. 지금의 종로 서순라길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이 길이다.’
이 길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야외 테이블과 그곳에서 와인 한 잔씩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장면에 들어가서 나도 와인 한잔하고 싶었다.
가게 앞 메뉴판을 눈싸움하는 것처럼 분석하고 또 분석해 적당한 곳을 골라 앉았다. 마르게리따와 뇨끼를 주문했다. 이탈리아에서 마르게리따라니! 곧 피자와 뇨끼가 나왔고, 생각과는 다른 음식들의 외모에 내 얼굴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튀어나왔다. 높은 화력에 타다 못해 구멍이 숭숭 나있는 피자 도우, 새빨간 토마토소스 위 섬처럼 둥둥 떠 있는 아이보릿 빛 치즈, 그 위로 푸른색을 뽐내는 바질. 내가 상상한 피자의 모습인데, 내 앞에 놓인 이탈리아 첫 정식 피자는 용돈 타 쓰는 고등학생 시절 대학가에서 친구들과 사 먹던 7,900원 씬피자의 비주얼이었다. (파스타부오노를 아는가.) 뇨끼는 더 처참했다. 조각낸 급식 김치전 모습이었다.
맛은 있을 거라 애써 당혹감을 감추었지만, 비주얼은 맛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그릇을 싹 비웠는데, 그건 야외 테이블에서 선선한 바람과 적당히 햇살을 맞으며 흘러나오는 노래 속에서 먹었기 때문이다.
콜로세움 피자 도감 속 피자는 이런 모습 아니었는데.
로제 떡볶이 소스가 묻은 어묵 같기도 하다. 하지만 뇨끼다.
이탈리아 로마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가 꼭 식당에서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먹어보라고 했다. 비록 피자와 뇨끼는 기대 이하였지만, 식당 티라미수의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르는 것이기에 티라미수를 시켰다. 친구가 네가 알던 티라미수가 아닐 것이라 했을 때, 그건 맛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로 생각했는데, 서빙된 티라미수는 정말 내가 아는 티라미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예상 밖인 재미있는 식당이었다.
마스카포네 치즈 크림과 촉촉한 빵이 겹겹이 쌓여 지질층 같이 보이는 평범한 티라미수와 달리, 노란색의 크림이 촉촉한 빵을 감싸고 있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던 티라미수에서 상상 이상의 풍미가 느껴졌다. 만약 티라미수를 먹지 않았다면 그 식당은 분위기만 좋을 뿐 실력은 형편없는 곳으로 기억 됐을 거다.
믿기지 않겠지만 티라미수 맞습니다.
다시 콜로세움
콜로세움부터 포로 로마노,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유적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빡빡한 여행은 선호하지 않는 터라 중간중간 자주 쉬었다. 그럼에도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하얀 밤하늘의 유럽이었다.
포로 로마노.
밤의 콜로세움이 이쁘다고 해서 다시 콜로세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콜로세움이 보이기 시작하자 바이올린 선율이 들렸다. 어서 오라는 웰컴 뮤직처럼.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등진 광장에서는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길목에는 바이올린 연주가 흘러나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악기고, 연주였다. 바이올린 연주는 콜로세움에서 뿜어나오는 주황색 불빛과 잘 어울렸다. 클래식이 이렇게 듣기 좋은 선율이었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분위기에 취해 콜로세움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