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7 / 아픈 손가락 이탈리아, 비 오는 로마, 뜨끈한 에스프레소 이탈리아로 가는 것은 조금 부끄러웠다. 2016년 엄청난 디저트러버 빵순이 친구와 유럽 여행을 했다. 이탈리아 특히 로마는 친구의 원픽 여행지였지만, 나는 친구를 꾀고 꼬셔 이탈리아에 가지 않는 엔딩을 맞았다. 심지어 이탈리아 로마 항공권을 예약한 상태였는데, 미련없이 항공 값 8만 원을 버렸다.
2016년 여행은, 한 달 여행의 일주일 치 숙소와 교통만 한국에서 예약하고 떠난 첫 유럽, 자유여행이었다. 이미 좋은 숙소는 예약 만석이라 마음이 심란했는데, 이탈리아 후기를 찾아볼수록 ‘마피아가 있다‘, ’치안이 안 좋다‘, ’역 근처에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라‘ 등의 공포 후기만 눈에 들어왔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무계획 완벽주의 여행자에게 이탈리아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갱스터들의 소굴이었다. 그래서 2016년, 나는 친구를 배신했다. 그리고 2019년, 다시 한번 그 친구를 배신했다. 이탈리아로 떠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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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이른 아침 사이 출발하는 비행기를 탄 덕분에, 오전, 로마 시내에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짐을 맡겨두고 젤라또를 먹으러 갔다. 나는 케이크, 각종 구움 과자 등 제과 디저트에는 별 감흥이 없지만, 아이스크림은 없어서 못 먹는다. 어릴 때는 1일 3 아이스크림 하다 혼도 많이 났다.
특히 유제품 가득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과일 샤베트? 취급하지 않는다. 쌀, 소금, 견과류 등 밍밍하고 슴슴한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마침 이탈리아 젤라또를 검색하니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리조 젤라또. 리조또 할 때 그 리조, 쌀이다.
이탈리아 첫 젤라또 가게는 지금 한국 백화점에서도 볼 수 있는 곳으로 퇴근길 종종 들려 젤라또 한 컵 하고 집에 가는데, 언제 먹어도 로마에서 먹은 첫 쫀득함을 따라갈 수 없다. 젤라또의 생명은 쫀쫀함이다. 그것을 로마 첫 젤라또 집이 내게 알려주었다. 모짜렐라 치즈 같은 쫀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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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chi Gelato. 판교 현대백화점과 더현대 여의도점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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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몇 달 살다 여행을 시작한 덕분인지, 여행 하루하루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옷도 그랬다. 어느 날은 동네 마실 가는 느낌으로 대충 껴입고 나서고, 어느 날은 화보 촬영하는 것처럼 한껏 꾸미기도 했다.
로마 첫날에는 비가 왔다. 흐리고 차갑고 추운 그날은 탐색데이로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었다. 가디건 위에 후드집업 위에 다시 가디건, 겉옷만 3개를 입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찬 기운에 승모근 힘이 잔뜩 들어갈 때쯤, 구글 지도의 별이 잔뜩 있는 거리에 다다랐다. 그 별들은 저장해 둔 에스프레소 바들로, 조이와 ‘우리 에스프레소는 꼭 먹자’며 엄선한 곳들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천천히 들이키며 몸을 녹일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오엠쥐. 이탈리아는 좌석 이용 금액을 별도로 받았다. 에스프레소 '카페'가 아닌 '바'인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앉아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금액 차이는 억울했다.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해야지 뭐.
바에 양팔을 올려 기댄 채로 설탕 한 봉지를 넣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툭 털어 마셨다. 에스프레소는 천천히 음미하면 쓰니, 한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는 대학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였다.
음!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뜨끈하고 끈적한 에스프레소의 풍미와 농도는 짙었다. 무지 쓴 에스프레소에 넣은 설탕은 에스프레소에 단맛을 주었다기보다는, 쓴맛을 중화시켜 줄 뿐이었다. 몸에 들어온 따뜻하고 묵직한 액체 덕분에 양 볼은 붉어졌다. 나는 나른해지면 홍조가 올라온다. 따뜻해. 생각보다 괜찮은걸?
에스프레소바를 나와 바로 옆 거리의 티라미수 가게에 갔다. 쓴 걸 먹었으니 단 걸로 밸런스를 맞춰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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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해지니 거리의 가로등과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묘하게 다운된 느낌의 로마 거리 속 반짝이는 조명에 ,어디서 재즈 음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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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에 취해 그만. 저 사진 1초 뒤의 이야기는, 착지할 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손바닥이 까졌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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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곳곳에 조각상이 많던 로마는 비 오는 밤과 잘 어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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