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추천해도 될까요? 이 레터를 편집하는데 틀어 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레터를 읽을 때 노래가 필요하다면 틀어주세요. 오늘의 레터가 여러분께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행복 호르몬에 작은 자극이 되길 바라며. (플레이리스트)
Day. 10
오늘도 조식 사랑해
동굴 수영
둘째 날은 섬 투어를 신청했다. 한국인 가이드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자킨토스는 아직 한국 관광상품 미개발 지역이었다. 약 5개월 동안 영어 속에 있다 보면, 실력 느는 건 잘 모르겠고, 두려움은 확실히 없어진다. 아무렴 어때? 사실 역사가 있는 유적지를 본다거나, 설명이 필요한 작품을 보는 게 아니어서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투어 일정에 동굴 수영이 있었다. 냅다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기는 바다 도시 울산에 살지만, 바다까지는 30분이나 걸리는 애매한 바다 도시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바다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방파제가 있는 바다 곳을 꿈꿨다. 그게 간지나니깐. 방파제도 멋진데, 동굴이라니. 절대 못 참지. 내가 언제 어디서 동굴 수영을 해보겠어!
조금 불편했지만, 호텔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꼭 물에 빠지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워터파크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해수욕장에서 여름 피서를 보냈는데 그때도 출발부터 수영복을 옷 안에 입고 있었다.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투어를 하며 본 섬의 풍경들
파워에이드 같은 새파란 바다를, 보트를 타고 가로질렀다. 여기가 태양의 후예에 나온 바다라는데, 케이윌의 ‘말해! 뭐해?’가 어디서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보트도 저런 보트였다.
보트는 어느 동굴로 들어가 섰다.
“수영하실 분?”
가이드가 지원자를 받았다. 내가 나설 차례인가! 지원자는 나와 또래의 스위스 친구 이렇게 오직, 둘. 알 수 없는 수심과 구명조끼 하나 없이 들어가라는 눈빛에 조금 당황했지만 ‘인간은 원래 물에 뜬다.’ 예전 해녀 체험했을 때 물에 가라앉는 것이 힘들었던 것을 복기하며 조심스레 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꽤 그럴듯하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양 다리는 마치 오리 다리처럼 미친 듯이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나도 스위스 친구처럼 우아하게 평형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배운 수영은 배영까지일 뿐. 그렇다고 자유형 발차기를 할 수 없진 않은가. 아마 동굴 밖을 뚫고 나갔을 거다.
여유롭게 웃고 있는 것 같지만, 보이나? 꽉 잡은 생명줄.
동굴 안 바닷 물이 유리 같았다.
2019년 해보고 싶은 소소한 것들 리스트의 바다 수영을 이루었다. 울산 동해 바다 쯤 생각했던 것을 저 멀리 지중해 바다에서 이뤘다.
물놀이 후 식사는 꿀맛인데, 이런 뷰라면 더 꿀맛.
노숙 전 그리스 마지막 밤
자킨토스 마지막 밤. 다음날 아테네로 돌아가 다시 공항 노숙 후 이탈리아로 떠나니,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다. 자킨토스 시내를 구경하다 키링을 샀다. 개구리 모양의 키링으로, 이곳의 전통 걱정이 인형이란다. 엄마 하나 나 하나 샀는데, 내 것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엄마 것은 엄마 차 키에 아직 달려있다. 효능은 잘 모르겠다. 엄마는 여전히 걱정이 많다.
자킨토스에는 현대 차가 참 많았다. 공장이 있는 터키와 가까워서 그런가? 현대 자동차의 고향, 울산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괜히 자랑스러웠고, 예전 아빠 차였던 트라제를 보았을 땐, 추억을 만난 듯 내적 친밀감도 들었다.